[사람들][나는 친환경 의생활자다] 제타 안(Zetta_Ahn)이 보내온, 뜨개처럼 포근한 가을 편지

관리자
2021-11-22

"생명은 없어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수명은 있으니까요"


저는 뜨개질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저 털실로 뜨는 걸 좋아할 뿐이에요. 아이는 셋이 있어요. 큰딸은 스물셋, 둘째 아들은 스물하나, 막내딸은 열 살입니다. 아이를 낳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길인지 많이 생각하며 지내온 것 같아요. 아이들 옷은 아기 때부터 물려받을 곳이 있으면 어디든 물려받아 입혔고요. 일회용 기저귀는 아마도 세 아이를 키우면서 한 팩도 사용하지 않았답니다. 천 기저귀를 쓰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면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마음에 흔들리는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막내가 태어나던 해부터 천 생리대로 바꾼 후 10년간 단 한 번도 일회용 생리대를 구매한 적이 없답니다. 당연히 큰딸도 첫 생리대를 천 생리대로 사용하였고요.

제타 안 작품


큰딸 가람이 9살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시작하면서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쓰레기 문제부터 음식이나 재활용 문제까지, 전반적인 환경 문제에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그러다 가끔 가족들과 자유여행으로 교육을 대체했던 우리는 그 또한 자연스럽게 유럽, 특히 북유럽 어디를 가나 보이는 second hand shop(중고매장)을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오래된 물건을 좋아하고 더구나 잘 버리지 않고 살고 있다 보니, 덴마크라는 나라를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어요. 어쩐지 우리 가족에게도 익숙한 문화였다고 할까요? 덴마크의 호이스콜레(인생학교)를 여러 번 다녀오면서, 학교 한쪽 공간에 학교에 다녔던 친구들이 기부하고 간 의류나 기타 소품들을 두고, 필요한 친구들이 아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참 좋았어요. 그 같은 문화나 방식 자체가 당연하게 자리한다는 게 점점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지요.


오래된 옷에 밴 시간과 추억을 다시 입고 고쳐 입으며 이어가고 싶어요

큰 딸 가람이 직접 커스터마이징 한 운동화



저는 요즘, 덴마크 중고 매장에서 구입한 신발을 자신만의 멋진 작품으로 탄생시키며 업 사이클링 작업에 재미를 느끼는 큰딸 가람이를 보면서, 사용하지 못하는 물건을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어려서부터 가족과 지내며 엄마의 철학을 함께 했던 아이들에게서 다시 엄마인 저도 얼마든지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질 일이 아닐 수 없답니다.


얼마 전에는 아이들 할아버지가 입던 데님 조끼에 뜨개로 만든 소매를 연결해서 데님과 니팅이 매치하는 세상 하나뿐인 재킷을 완성했답니다. 이런 작업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색을 묻고 같이 조합해 보면서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옷이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품을 수 있기를, 그래서 좀 더 오래오래 입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랍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자연과 함께 사람이 잘 어울려 살아간다는 말이 아닐까요. 시간이 배이고 추억이 떠오르는 오래된 물건들을 버리지 못한 채 쓸모를 기다리다, 문득 누군가의 아이디어나 손길과 만나 다시 쓸모를 찾는 것. 아마 물건들도 분명히 기뻐할 거예요. 생명은 없다 해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수명이란 존재하니까요.


한번 상상해 보세요. 23살 된 큰딸이 13살 때 구입한 보드 장갑이 있어요. 한겨울에 고작 한두 번, 10년이라 해도 사용한 시간은 몇 시간 되지 않아요. 손에 꼈던 시간보다 서랍 안에 있던 시간이 더 오래죠. 얇은 인조 가죽으로 둘러싸인 보드 장갑은 허물이 벗겨지듯 보기 흉한 모습으로 뜯어지기 시작했어요. 장갑 안쪽은 아직도 따뜻하고 멀쩡한데 말이죠. 엄마는 한참을 바라보다 주섬주섬 실과 바늘을 들고 꿰매고 엮어서 개성 넘치는 장갑으로 변신시켰지요. 그리고 10살 막내딸에게 선물로 주었답니다. 오래되었지만 전혀 새로운 선물이 된 버려질 뻔한 장갑은, 기뻐하는 막내딸 손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막내 풀잎의 글쓰기 흉내 :)


뜯어진 보드 장갑, 털실로 수선한 모습




제타 안은 누구?

시골에서, 지구에 자연스러운 텃밭을 일구며 색색의 털실로 무언가를 만드는 프리스타일 니터. 세 아이들과 남편까지 다섯 식구가 똘똘 뭉쳐, 그러나 저마다의 인생을 엮어낸다. 마치, 비 개인 하늘에 반짝 얼굴을 드러낸 무지개 같다. 세 아이 중 두 아이는 홈스쿨링으로 성인이 되었고, 열 살 막내도 언니 오빠처럼 그렇게 자라는 중이다.   

(인스타그램 @zetta_ahn. 홈페이지 https://www.mujigaesala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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