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가 끝나고 그 여운도 슬슬 옅어질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유난히 떠오르는 참가자들이 있었다. 사실 ‘파티’란, 사람들이 와주지 않으면 그 이름값조차 할 수 없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보자는 의미로, 파티 내내 인상 깊었던 참가자들을 뉴스레터 10호에서 만나보기로 했다. 서너 분을 인터뷰하고 기사 하나로 구성하려고 했지만 한 분 한 분의 인터뷰가 주는 진정성과 울림이 웬만큼 요약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어서 앞으로의 뉴스레터에 각각 한 분씩 소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시입다 ‘21%파티’를 존재하게 해준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구입' 이 아닌 '공유' 하는 21% 파티, 감정적 교류를 느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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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영화 영상을 통해 기후위기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정연수입니다. 지금은 공간 미디어 회사 ‘담장너머’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 중입니다.
Q: 어떻게 21% 파티에 오게 되셨나요?
A: 어릴 적 꿈이 패션 디자이너였을 만큼 패션과 트렌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패스트패션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고, 패션 매거진 크리에이터였으며, 뷰티 업종의 영상물에 참여하며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환경과 패션의 관계를 알게 된 이후, 저의 무지했던 시기가 부끄럽고 주워 담고 싶었습니다. 나름의 전환을 한답시고 제가 한 선택은 ‘지속가능한 의류’ 등의 라벨이 붙은 패스트패션 의류를 소비한 것이었어요. 사실상 변화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다시입다연구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꾸준히 업로드되는 내용을 보니 제가 주도적인 소비 선택권마저 상실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미 있는 것들을 다시 쓰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에 2021년 목표 중 하나가, ‘새 옷이 아닌 빈티지 의류만 사기’가 되었을 정도였죠. 실제로 5개월 넘게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제게 이런 큰 변화를 준 다시입다연구소에서, ‘구매’가 아닌, ‘공유’를 제안하는 파티를 연다고 하는데 참여를 안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21%파티가 개인에게 얼마나 만족감을 줄 수 있나 직접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Q: 21%파티. 기억에 남아있는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나 느낌들을 말씀해 주신다면.
A: "어쩜 이렇게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였을까!" 같이 간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가 잊히지 않습니다. 그 말엔 많은 의미가 있는데요. 미디어에서 흔히 보는 여성들은 저를 '보통이 아닌 체형과 키의 소유자'로 느끼게 했거든요. 모두 길쭉길쭉하고 마네킹 같은 몸매를 가지고 있어서...그러나 21%파티에는 ’실제 사람‘들이 선택한 옷들이 있었습니다. 결코 전시된 체형의 의류가 아니었죠.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참여자가 쉽게 입어봤고, 마치 그 사람의 옷처럼 느껴졌어요. 물론 모두가 같은 체형은 아니니까 사이즈 차이가 있긴 했지만요. 내 몸에 대보기만 해도 바닥에 질질 끌리는 새 옷을 살 때와는 다른 차원이랄까요.
누군가에게 충분히 사랑받았고, 여전히 사랑받을만한 아이템들을 볼 수 있었어요. '가격 태그' 대신 달려있던 '교환 태그'에는 그 옷들이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 잘 적혀있었습니다. 그 진심이 너무 좋아서, 옷에 달려 있던 태그들을 아직도 하나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가격 태그가 아니라 ‘가치 태그’처럼 느껴졌거든요. 파티에 모인 사람들이 비록 초면이지만 자신의 옷이 잘 어울릴만한 사람에게 가져다주며 권하는 모습이 계속 발견되었던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 같아요. 우리 모두 내가 사랑했던 것을 남도 사랑해 주길 바라잖아요. 그래서인지 새 옷을 살 때와는 다르게, 감정적 교류가 풍부한 시간을 보냈다고 기억됩니다.

Q: 파티에서 득한 아이템은 자주 사용하시나요?
A: 하나같이 정말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약간 두툼한 하얀색 트위드 재킷이 있는데요. 사실 가을 겨울옷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기후 변화 때문인지 4월, 5월이 되어도 매우 추운 날이 있더라고요. 덕분에 예정보다 빠르게 애용하고 있습니다.
Q: 개인적으로 21%파티를 열어보셨나요? 해보셨다면 그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
A: 아쉽게도 아직 21%파티를 열어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열려고 계획 중에 있습니다!
Q: 인스타를 보니까 다큐 필름 작업을 하시는 것 같던데요?
A: 학부 전공이 영화이고 환경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었는데, 작년 12월에 지금 직장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계약직으로 시작했다가 정규직이 되면서 일정에 차질이 생겼지만, 올해 환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는 결심은 꼭 지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공간 미디어 회사인 지금의 직장에 '공간과 기후변화'에 대한 콘텐츠 기획을 제안했고 제가 연출을 맡아 콘텐츠 제작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료조사를 하면서 '건축물'이 환경에 어마어마한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업' 다음으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이 바로 '건축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로 피해를 보는 것은, 다름 아닌 '건축물’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라는 사실 등... 외면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많이 보였습니다. 버거울 정도로 복합적인 현실 앞에 무기력해질 때도 많았습니다. 각 분야 전문가와 실무진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정말 힘든 프로젝트가 될 뻔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두 가지 방식으로 세상에 전달될 것 같습니다. 6월 말~7월 중에 ‘담장너머’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적으로 감상할 수 있고, 운이 좋아 영화제에 선택된다면,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엔 영화제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혹시 이번 프로젝트에 지식적, 관계적, 경제적인 후원을 하고 싶은 분들이 계신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많이요. (인스타그램 @realisatrixe)

Q: ‘21%파티’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환경을 위한 실천을 꾸준히 하시는 것 같아요. 자원봉사나 제로웨이스트 등. 왜 그렇게 열심히 하시나요?
A: 저는 개인의 실천이 환경을 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천조차 하지 않는 개인이 기업이나 정부를 향해 소리를 내면,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M도날드의 햄버거를 먹으면서 동물권 시위를 하는 경우가 없는 것처럼요. 그리고 저 스스로가 이런 행동조차 하지 않으면, 다시 환경문제에 무뎌질 것 같았어요. 실천하는 지금도 충분히 무디니까요. 제 목소리의 진정성을 위해서 열심히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Q:‘기후 슬픔’, ‘기후 우울’ 이라는 말도 있듯이, 노력해도 잘 바뀌지 않는 세상에 대해 무력감이 들지는 않나요? 이런 감정을 느낀다면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A: 하루하루가 무력감과 싸움입니다.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이 저를 ‘환경쟁이’라고 부르고, 제 입에서 ‘기후...’라는 말만 나와도 피곤한 눈동자를 하더라고요. 지겨운 것도 이해가 돼요. 저도 지겹거든요. 근데 지겨운 부모님과 선생님의 잔소리가 우리를 바꿨잖아요. 다르지 않더라고요. 종이컵이 즐비하던 사무실에 어느 순간부터 텀블러나 개인 컵만 보입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지인분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줄 환경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하세요. 제 이야기에 무덤덤한 것처럼 보였던 학교 동기가 욕실과 주방 액체 용품을 모두 고체 바 형태로 전환했어요. 연락도 없던 사람들이 환경 기사가 보이면 제게 공유를 해줘요. 주변 사람들이 손수건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수저세트를 들고 다니고, 빨대를 거절합니다. 심지어는 이건 어떻게 분리배출해야 하냐는 연락이 와요.
세상의 기준을 너무 큰 곳에 두면 무력감이 들지만, 내 주변으로 두면 분명 변화한 것이 보입니다. 그러면 더 큰 세상이 제 노력이나 마음을 배신했을 때, 무력감보단 전투력이 타오릅니다. 그럼 오히려 더 살아갈 맛이 나더라고요. 이번엔 저 문제를 한 번 파볼까, 하면서요. 참고로 제 MBTI 성격 유형은 ENTJ입니다. 그만큼 전투에 진심입니다.
Q:연수님이 활동하시는 일들과 다시입다 21%파티가 어떻게 연결되고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A: '공유'와 '공존'이라는 키워드를 놓치지 않으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공유하는 것이 재화가 아닌 경험이고, 이를 통해 공존의 방식을 확장할 수 있다는 걸 배웠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다시입다 연구소와 함께 패션과 환경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작업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사심이 있습니다.
국내 기반의 의복과 주거 분야의 환경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거든요. 많은 쟁점이 제시되는 식품과는 대조적으로 말이에요. 의식주 시리즈를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건물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면 의복에 대한 이야기도 꼭 해보고 싶습니다.
Q:중고 의류 구매 경험이 있으신가요? 주로 이용하는 플랫폼이나 오프라인 매장이 있다면? 파티 이후 중고에 대한 달라진 인식이나 행동 변화가 궁금합니다.
A: 올 2021년은 중고 의류만 구입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도 ‘도떼기마켓’ 같은 플랫폼에서 중고 의류를 몇 번 사기도 했었고요. 아쉽게도 ‘당근 마켓’ 이전엔 이런 중고 거래 플랫폼이 오래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품질이 좋은 오프라인 매장은 서울지역에 국한되어 있고, 폭이 좁아서 온라인 빈티지 의류 사이트를 떠돌며 이용해왔습니다.
파티 이후에는 이런 중고 의류 구매 행위 자체도 더 심사숙고하게 된 것 같아요. 차라리 취향과 체격이 비슷한 이들과 공유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지인의 옷, 가족의 옷 중에서 맘에 드는 옷이 하나씩은 있으니까요.
Q: 21%파티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아쉽거나 보완되었으면 하는 부분도 말씀해주세요.
A: 솔직히 말하면 아쉬운 점은 없었습니다. 공유의 즐거움에 대하여 직접 느낄 수 있었고, 물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또 사랑받은 물건은 관리 상태가 좋기 때문에 품질 걱정도 덜 수 있었습니다.
Q: MZ세대 다음엔 기후세대라고 하는데요, ‘기후세대’라니, 마음 아픈 조어이기도 해요. 연수님께서 바라고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A: ‘당연한 것’들이 조금 더 많아진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자유를 굳이 외치지 않아도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 인권을 외치지 않아도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 공존을 외치지 않아도 공존이 되는 세상요.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저뿐만 아니라 과도기를 살아가는 MZ세대가 소리를 더 내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혐오 사회라고 불릴 만큼 갈등과 혐오가 많은 사회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일관된 소리만 있는 세상보다는 건강하고 자유로운 세상인 것 같습니다. 한가지 소리와 한가지 방향만 있다면 그건 독재 사회인 거니까요. 그러니까 우리 세대만큼은 서로를 조금 더 믿어줘도 될 것 같아요. 일반화하며 싸우기보다는, ‘당연한 것’들의 확장을 위해 다 같이 애쓰고 있는 것이라고요. 적어도 우린 침몰하는 배를 방관하는 이들을 보며 함께 분노했을 정도로, ‘완전히 틀린 것’에 대한 개념만큼은 공유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기후세대도 분명 생존하게 될 것입니다. 완전히 망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게 되도록 방관하는 것이 ‘완전히 틀린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 공감하고 있잖아요. 충돌이 있기에 우주가 있었던 것처럼, 다음 세대가 안전하게 살아갈 시스템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Q: 다시입다연구소는 이제 1년 정도 되었어요. 앞으로도 21%파티를 계속 열어나갈 계획인데요. 조언을 해 주신다면요.
A: 우선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포기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전문가는 아니고 경험이 많이 부족한 개인일 뿐이지만,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필환경 시대'라는 이름 아래에서,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은 그린워싱으로 점철된 악행을 ‘여전히’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지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환경문제는 끝이 나지 않는데, 좋은 환경 프로젝트들이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포기하지 말아 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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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가 끝나고 그 여운도 슬슬 옅어질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유난히 떠오르는 참가자들이 있었다. 사실 ‘파티’란, 사람들이 와주지 않으면 그 이름값조차 할 수 없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보자는 의미로, 파티 내내 인상 깊었던 참가자들을 뉴스레터 10호에서 만나보기로 했다. 서너 분을 인터뷰하고 기사 하나로 구성하려고 했지만 한 분 한 분의 인터뷰가 주는 진정성과 울림이 웬만큼 요약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어서 앞으로의 뉴스레터에 각각 한 분씩 소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시입다 ‘21%파티’를 존재하게 해준 참가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영화 영상을 통해 기후위기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정연수입니다. 지금은 공간 미디어 회사 ‘담장너머’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 중입니다.
Q: 어떻게 21% 파티에 오게 되셨나요?
A: 어릴 적 꿈이 패션 디자이너였을 만큼 패션과 트렌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패스트패션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고, 패션 매거진 크리에이터였으며, 뷰티 업종의 영상물에 참여하며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환경과 패션의 관계를 알게 된 이후, 저의 무지했던 시기가 부끄럽고 주워 담고 싶었습니다. 나름의 전환을 한답시고 제가 한 선택은 ‘지속가능한 의류’ 등의 라벨이 붙은 패스트패션 의류를 소비한 것이었어요. 사실상 변화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다시입다연구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꾸준히 업로드되는 내용을 보니 제가 주도적인 소비 선택권마저 상실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미 있는 것들을 다시 쓰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에 2021년 목표 중 하나가, ‘새 옷이 아닌 빈티지 의류만 사기’가 되었을 정도였죠. 실제로 5개월 넘게 잘 실천하고 있습니다. 제게 이런 큰 변화를 준 다시입다연구소에서, ‘구매’가 아닌, ‘공유’를 제안하는 파티를 연다고 하는데 참여를 안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21%파티가 개인에게 얼마나 만족감을 줄 수 있나 직접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Q: 21%파티. 기억에 남아있는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나 느낌들을 말씀해 주신다면.
A: "어쩜 이렇게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였을까!" 같이 간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가 잊히지 않습니다. 그 말엔 많은 의미가 있는데요. 미디어에서 흔히 보는 여성들은 저를 '보통이 아닌 체형과 키의 소유자'로 느끼게 했거든요. 모두 길쭉길쭉하고 마네킹 같은 몸매를 가지고 있어서...그러나 21%파티에는 ’실제 사람‘들이 선택한 옷들이 있었습니다. 결코 전시된 체형의 의류가 아니었죠.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참여자가 쉽게 입어봤고, 마치 그 사람의 옷처럼 느껴졌어요. 물론 모두가 같은 체형은 아니니까 사이즈 차이가 있긴 했지만요. 내 몸에 대보기만 해도 바닥에 질질 끌리는 새 옷을 살 때와는 다른 차원이랄까요.
누군가에게 충분히 사랑받았고, 여전히 사랑받을만한 아이템들을 볼 수 있었어요. '가격 태그' 대신 달려있던 '교환 태그'에는 그 옷들이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 잘 적혀있었습니다. 그 진심이 너무 좋아서, 옷에 달려 있던 태그들을 아직도 하나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가격 태그가 아니라 ‘가치 태그’처럼 느껴졌거든요. 파티에 모인 사람들이 비록 초면이지만 자신의 옷이 잘 어울릴만한 사람에게 가져다주며 권하는 모습이 계속 발견되었던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 같아요. 우리 모두 내가 사랑했던 것을 남도 사랑해 주길 바라잖아요. 그래서인지 새 옷을 살 때와는 다르게, 감정적 교류가 풍부한 시간을 보냈다고 기억됩니다.
Q: 파티에서 득한 아이템은 자주 사용하시나요?
A: 하나같이 정말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약간 두툼한 하얀색 트위드 재킷이 있는데요. 사실 가을 겨울옷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기후 변화 때문인지 4월, 5월이 되어도 매우 추운 날이 있더라고요. 덕분에 예정보다 빠르게 애용하고 있습니다.
Q: 개인적으로 21%파티를 열어보셨나요? 해보셨다면 그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
A: 아쉽게도 아직 21%파티를 열어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열려고 계획 중에 있습니다!
Q: 인스타를 보니까 다큐 필름 작업을 하시는 것 같던데요?
A: 학부 전공이 영화이고 환경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었는데, 작년 12월에 지금 직장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계약직으로 시작했다가 정규직이 되면서 일정에 차질이 생겼지만, 올해 환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는 결심은 꼭 지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공간 미디어 회사인 지금의 직장에 '공간과 기후변화'에 대한 콘텐츠 기획을 제안했고 제가 연출을 맡아 콘텐츠 제작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료조사를 하면서 '건축물'이 환경에 어마어마한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업' 다음으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이 바로 '건축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로 피해를 보는 것은, 다름 아닌 '건축물’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라는 사실 등... 외면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많이 보였습니다. 버거울 정도로 복합적인 현실 앞에 무기력해질 때도 많았습니다. 각 분야 전문가와 실무진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정말 힘든 프로젝트가 될 뻔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두 가지 방식으로 세상에 전달될 것 같습니다. 6월 말~7월 중에 ‘담장너머’ 유튜브 채널에서 순차적으로 감상할 수 있고, 운이 좋아 영화제에 선택된다면,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엔 영화제에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혹시 이번 프로젝트에 지식적, 관계적, 경제적인 후원을 하고 싶은 분들이 계신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많이요. (인스타그램 @realisatrixe)
Q: ‘21%파티’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환경을 위한 실천을 꾸준히 하시는 것 같아요. 자원봉사나 제로웨이스트 등. 왜 그렇게 열심히 하시나요?
A: 저는 개인의 실천이 환경을 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천조차 하지 않는 개인이 기업이나 정부를 향해 소리를 내면,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M도날드의 햄버거를 먹으면서 동물권 시위를 하는 경우가 없는 것처럼요. 그리고 저 스스로가 이런 행동조차 하지 않으면, 다시 환경문제에 무뎌질 것 같았어요. 실천하는 지금도 충분히 무디니까요. 제 목소리의 진정성을 위해서 열심히 실천하려 노력합니다.
Q:‘기후 슬픔’, ‘기후 우울’ 이라는 말도 있듯이, 노력해도 잘 바뀌지 않는 세상에 대해 무력감이 들지는 않나요? 이런 감정을 느낀다면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A: 하루하루가 무력감과 싸움입니다.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이 저를 ‘환경쟁이’라고 부르고, 제 입에서 ‘기후...’라는 말만 나와도 피곤한 눈동자를 하더라고요. 지겨운 것도 이해가 돼요. 저도 지겹거든요. 근데 지겨운 부모님과 선생님의 잔소리가 우리를 바꿨잖아요. 다르지 않더라고요. 종이컵이 즐비하던 사무실에 어느 순간부터 텀블러나 개인 컵만 보입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인 지인분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줄 환경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하세요. 제 이야기에 무덤덤한 것처럼 보였던 학교 동기가 욕실과 주방 액체 용품을 모두 고체 바 형태로 전환했어요. 연락도 없던 사람들이 환경 기사가 보이면 제게 공유를 해줘요. 주변 사람들이 손수건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수저세트를 들고 다니고, 빨대를 거절합니다. 심지어는 이건 어떻게 분리배출해야 하냐는 연락이 와요.
세상의 기준을 너무 큰 곳에 두면 무력감이 들지만, 내 주변으로 두면 분명 변화한 것이 보입니다. 그러면 더 큰 세상이 제 노력이나 마음을 배신했을 때, 무력감보단 전투력이 타오릅니다. 그럼 오히려 더 살아갈 맛이 나더라고요. 이번엔 저 문제를 한 번 파볼까, 하면서요. 참고로 제 MBTI 성격 유형은 ENTJ입니다. 그만큼 전투에 진심입니다.
Q:연수님이 활동하시는 일들과 다시입다 21%파티가 어떻게 연결되고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A: '공유'와 '공존'이라는 키워드를 놓치지 않으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가 공유하는 것이 재화가 아닌 경험이고, 이를 통해 공존의 방식을 확장할 수 있다는 걸 배웠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다시입다 연구소와 함께 패션과 환경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작업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사심이 있습니다.
국내 기반의 의복과 주거 분야의 환경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거든요. 많은 쟁점이 제시되는 식품과는 대조적으로 말이에요. 의식주 시리즈를 작업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건물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면 의복에 대한 이야기도 꼭 해보고 싶습니다.
Q:중고 의류 구매 경험이 있으신가요? 주로 이용하는 플랫폼이나 오프라인 매장이 있다면? 파티 이후 중고에 대한 달라진 인식이나 행동 변화가 궁금합니다.
A: 올 2021년은 중고 의류만 구입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도 ‘도떼기마켓’ 같은 플랫폼에서 중고 의류를 몇 번 사기도 했었고요. 아쉽게도 ‘당근 마켓’ 이전엔 이런 중고 거래 플랫폼이 오래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품질이 좋은 오프라인 매장은 서울지역에 국한되어 있고, 폭이 좁아서 온라인 빈티지 의류 사이트를 떠돌며 이용해왔습니다.
파티 이후에는 이런 중고 의류 구매 행위 자체도 더 심사숙고하게 된 것 같아요. 차라리 취향과 체격이 비슷한 이들과 공유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지인의 옷, 가족의 옷 중에서 맘에 드는 옷이 하나씩은 있으니까요.
Q: 21%파티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아쉽거나 보완되었으면 하는 부분도 말씀해주세요.
A: 솔직히 말하면 아쉬운 점은 없었습니다. 공유의 즐거움에 대하여 직접 느낄 수 있었고, 물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또 사랑받은 물건은 관리 상태가 좋기 때문에 품질 걱정도 덜 수 있었습니다.
Q: MZ세대 다음엔 기후세대라고 하는데요, ‘기후세대’라니, 마음 아픈 조어이기도 해요. 연수님께서 바라고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A: ‘당연한 것’들이 조금 더 많아진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자유를 굳이 외치지 않아도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 인권을 외치지 않아도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 공존을 외치지 않아도 공존이 되는 세상요.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저뿐만 아니라 과도기를 살아가는 MZ세대가 소리를 더 내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혐오 사회라고 불릴 만큼 갈등과 혐오가 많은 사회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일관된 소리만 있는 세상보다는 건강하고 자유로운 세상인 것 같습니다. 한가지 소리와 한가지 방향만 있다면 그건 독재 사회인 거니까요. 그러니까 우리 세대만큼은 서로를 조금 더 믿어줘도 될 것 같아요. 일반화하며 싸우기보다는, ‘당연한 것’들의 확장을 위해 다 같이 애쓰고 있는 것이라고요. 적어도 우린 침몰하는 배를 방관하는 이들을 보며 함께 분노했을 정도로, ‘완전히 틀린 것’에 대한 개념만큼은 공유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기후세대도 분명 생존하게 될 것입니다. 완전히 망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게 되도록 방관하는 것이 ‘완전히 틀린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 공감하고 있잖아요. 충돌이 있기에 우주가 있었던 것처럼, 다음 세대가 안전하게 살아갈 시스템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Q: 다시입다연구소는 이제 1년 정도 되었어요. 앞으로도 21%파티를 계속 열어나갈 계획인데요. 조언을 해 주신다면요.
A: 우선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포기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전문가는 아니고 경험이 많이 부족한 개인일 뿐이지만,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필환경 시대'라는 이름 아래에서, 패스트패션 브랜드들은 그린워싱으로 점철된 악행을 ‘여전히’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지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환경문제는 끝이 나지 않는데, 좋은 환경 프로젝트들이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포기하지 말아 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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