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나는 친환경 의생활자다] 황혁주 대표(리페어 라이프 앤 디자인)

관리자
2022-01-26



사진 속 입고 있는 옷들은 모두 중고 옷. 언젠가부터 새 옷은 사지 않고 있다고 한다.



"키보드, 마우스, 충전케이블... 고칠 수 있다면 고쳐 쓰는 것이 당연한 세상"


 황혁주('리페어 라이프 앤 디자인' 대표) 씨는 ‘제1회 21%파티’(2020. 9) 참가자이다. 심윤주 작가의 핸드페인팅 워크숍에 참여하여 자신의 회사 로고를 페인팅하던 모습으로 기억한다. 인친이 되어 그의 피드를 주의 깊게 보게 됐는데 미다스의 손이 여기 있구나 싶었다.

컴퓨터 자판을 고친다는 것도 생소했거니와(고장 나면 새로 사니까!) 키 캡을 뜯어 하나하나 세척하고 손질하는 모습이나, 충전 케이블에 철사나 테이프를 감아 사용하고, 아예 주변의 고장 난 키보드를 맡아서 수리한 뒤 보내주는 정성이라니. 그가 21%파티에 오게 된 것도 다 연결된 수순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Q. 혁주 님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A. 반갑습니다, 본업인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생존하며 퇴근 후에는 컴퓨터용 키보드도 수리하는 황혁주입니다. 회사 이름, ‘리페어 라이프 앤 디자인’ 은 '인생도 디자인도 고쳐가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Q. ‘21%파티’에 처음 오셨을 때 기억하세요? 2020년 9월, 서울시NPO지원센터였죠. 어떻게 알고 참여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A.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 메일링 서비스를 받다가 ‘21% 파티’를 알게 됐어요. 신청할까 말까 망설였던 기억이 나요. 남성은 저 하나일 것 같아서요. 하지만 오래전부터 환경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 중 남성의 수가 훨씬 적다고 느끼며 살아왔거든요. '나라도 참여해야겠다' 싶었어요. (남성이 환경운동에 적게 참여한다는 건 저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Q. 이미 환경을 위한 일들을 실천하고 계셨던 거죠? 어떤 실천을 해오셨나요?

A. 할 수 있는 건 계속 해왔어요. 텀블러와 손수건 사용하고 대중교통 이용하고, 점심 도시락도 챙기고요. 배달 음식은 지양합니다. 플라스틱 용기에 먹는 것은 맛도 떨어지고 쓰레기도 많이 나오니까요. 물이나 전기는 기본으로 아끼고, 건전지도 충전기를 함께 사용하고 있어요.




아끼던 물건을 계속 사용하고, 쓰레기도 줄이는 고쳐쓰기


 미다스 황의 수리수리마하수리 작업실 https://www.instagram.com/repairlifedesign/


Q. 컴퓨터 키보드나 휴대폰 충전기 연결 부분 수리해서 올려둔 인스타 피드가 흥미롭고 감동적입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A. 고등학교 때부터 디자인 전공이어서 컴퓨터로 일하며 살다 보니, 버려지는 전자 폐기물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전 직장에서도 괴로웠던 것이, 디자이너가 작업한 대형 광고물이나 화장품 매장의 아크릴 진열대가 제작되고 나면,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버려지거든요. 매주 금요일마다 플라스틱 쓰레기 산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퇴근했는데... 스트레스였어요.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보자고 생각하던 중에 마침, 디자이너가 50명도 넘는 회사의 키보드 문제가 발생했고, 제가 해결하면서 키보드를 고치게 되었어요.


Q. 사용자로서 고쳐 쓰면 어떤 점이 좋을까요?

A. 가장 좋은 건 지출이 주는 것이고요(^^;). 버리고 새로 살 때, 제품을 검색하고 공부하고 고민하고 결제하기까지... 나의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죠. 아끼던 물건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서 편하고 쓰레기도 줄이고요. 무엇보다 기업의 무분별한 신제품 출시에 영향을 줄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효과를 낼 수도 있겠지요.


Q. 수리가 가능한데도 새것을 사는 이유는 왜일까요?

A. 요즘은 수리점 찾기가 정말 어렵고, 액세서리들은 크게 비싸지도 않으니 찾고 맡기고 할 시간에 간편하게 주문하는 게 익숙한 거겠죠. 게다가 고쳐 쓰는 것보다 신제품을 사용해야 앞선다는 시류도 있는 것 같고요. 기업들은 꾸준한 매출을 위해 고칠 수 없는 제품을 설계하기도 해요. 일정 기간 사용하면 고장 나는 제품을 만들지요.


Q. 혁주 님의 솜씨에 반응들이 어떤지 궁금해요.

A. 전화나 문자로 문의할 때까지는 의심쩍어하다가 완성된 제품을 받아보면 만족해한다는 걸 느낄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고치는 건지 자세하게 물어보는 분들도 있고, 주변에 비슷한 고장이 있다며 속적으로 의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Q. 기억에 남는 사연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한 회사에서 몇 년 동안 고장 난 키보드를 모두 가져오신 적이 있습니다. 한동안 이 회사의 키보드만 수리했는데 다음 달에 찾아가셨어요. 새로 구입했다면 7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경우였지요. 또 키보드에 오미자 음료를 쏟아 거의 모든 키를 분해하고 끈적이는 오미자를 닦아낸 적이 있어요. 배터리 충전 키보드라 물 세척을 못해서, 전자기판 세척용 알코올을 사용했죠. 3일 동안 조금씩 작업해서 완벽히 세척 후 보내드렸는데 이분은 환경을 생각하는 분이었어요. 고쳐서 다시 쓰는 의미를 중요하게 말씀하시면서 수리비에 지원금까지 보내주셔서 기억에 남습니다.


미다스 황의 수리수리마하수리 작업실 https://www.instagram.com/repairlifedesign/


Q. 수리할 수 있는 범위(영역)는 어디까지인가요? ‘이런 것까지 고쳐봤다’ 하는 것들 있으면 자랑 좀 해주세요.

A. 사실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범위라서 자랑이라고 할 수는 없고요, 키보드를 전문적으로 수리하는 분들은 언제나 있었어요. 다만, 다들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키 캡 하나 고장 나는 문제'를 SNS로 알리면서 활동한 것은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키보드, 마우스, 충전 케이블, 노트북, 맥북이나 아이맥에 윈도 10 설치, 아이폰 배터리 교체, 천장조명 LED로 바꾸기, 녹슨 무쇠 팬 밀고 시즈닝 다시 하기, 숫돌에 칼갈이, 자전거 등 기본적으로 우리 주변에 있는 도구를 이용해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건 일단 해봅니다.


Q. 디자인이 주업이기도 하신데 요즘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시는지요?

A. 보통 하반기에 디자인 외주 업무가 많습니다. 공공기관이나 단체의 온라인, 오프라인 홍보 관련 디자인을 맡아서 진행합니다. 지금은 민화 작가와 함께 민화를 알리고 즐길 수 있는 디자인 상품을 고민하며 진행하고 있어요. 또 경계선 지능 청년의 자립을 위한 디자인 업무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데, 저 혼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함께 할 수 있는 기관이나 활동가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득템의 성지, 21%파티


Q. ‘디자인’이란 무언가의 존재(있음)를 위한 작업인데요, 물건이며 제품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또 다른 것을 내놓는 작업들에 어려움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A. 제 디자인이 대량의 물건으로 제작되고 포장되거나, 일정 기간 사용 후 버려지는 용도일 때가 있어요. 때문에 처음 도면을 그릴 때부터 최대한 폐기물이 나오지 않는 방법을 찾아서 설계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지금 당장 해결 못하더라도 상처받지 말고, 맘속에 응어리를 남겨 나중에라도 해결 방법을 찾겠다 생각하는 쪽입니다.


Q. 환경과 관련한 디자인 작업으로 완성된 결과물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제로 웨이스트와 관련해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2021년에 스스로의 다짐에서 출발한 제로 웨이스트 아이콘/스티커 디자인을 진행했어요. 또 애플 키보드 옛날 자판들이 많이 남아서 원하는 문구나 전화번호를 넣은 메시지 보드 디자인을 고민 중이에요. 자동차 앞 유리에 연락처 붙이는 아이템처럼요. 최근, 디자인 업무보다 키보드 수리가 늘어나서 혼란스러웠는데, 질문을 받고 보니 디자인으로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찾아봐야겠어요! 제가 더 관심 가지는 환경 분야로 디자인을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혁주 대표가 제작한 제로 웨이스트 아이콘/ 스티커 


Q. 2022년 계획은 잘 세우셨나요? 1월이 지나고 있는데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초중고 컴퓨터실이나 공공기관의 키보드는 수 십, 수 백 명이 만지면서도 청소 한 번을 안 하고 고장 나면 그냥 버리고 새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전량 수거해서 깨끗하게 세척하고 다시 사용하는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싶어요. 이걸 모든 대학교나 기업들까지 실행한다면 플라스틱 전자폐기물 배출량이 엄청나게 줄어들 거라 생각합니다. 혼자 하기보다 동료나 팀 체제로 고용을 일으키며 활동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계획은 경계선 지능 청년들과 보호 종료 청소년의 자립을 도울 수 있는 기술 전수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어요. 생업이 우선이라 힘들지만 상반기 안에 설립할 수 있도록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Q. 지금까지 두 번의 21% 파티에 오셨었죠. 21%파티에서 느꼈던 소감 좀 여쭤봐도 될까요?

A. 아름다운가게나 중고 매장에서 옷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있었는데, 21%파티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의류산업의 환경 파괴 문제를 제대로 알렸다고 생각해요. 또 툴킷을 구입해서 누구나 열고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Q. 혁주 님에게 21%파티란?

A. 모든 파티에 참여하고 놀러 가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런 행사에서 나만의 취향을 발견하는 건 너무나 즐거운 경험이니까요. 저는 옛날부터 여자 사람 친구들과 옷 구경도 잘 해서 그런지, 남성 의류가 없어도 늘 맘에 드는 아이템을 발견했거든요! 이런 걸 보면 ‘21%파티’ 는 진정 득템의 성가 아닐까요?



21%파티 참가 후기 인스타그램 게시물


미다스 황의 수리수리마하수리 작업실 https://www.instagram.com/repairlife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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